1. 영화줄거리 (결말포함)
배우를 꿈꾸며 연기수업을 받던 에이프릴에게선 또래의 여자에게 보기 힘든 자유로움과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인생의 매 순간을 제대로 느끼며 살고 싶다’는 남자 프랭크는 에이프릴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였습니다.
황홀한 도심의 파티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렬한 호기심으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 후 7년 뒤인 1955년 , 레볼루셔너리 로드 115번지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뉴욕 맨해튼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교외의 지역 레볼루셔너리라는 아름다운 동네에서 가장 좋은 집에서 아름다운 부부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에이프릴은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지만 혹평을 면치 못합니다.
두 명의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그녀는 현재의 답답한 자신의 현실에 깊은 환멸을 느낍니다.
프랭크는 현재가 따분하고 직장이 따분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적당한 허영심과 열등감으로 , 스스로 괜찮은 남자라는 인정욕구만 충족되면 그럭저럭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거창한 포부도 없지만 대단치 않은 직장에서 어린 직원과의 외도를 통해서도 자신의 만족을 소소하게 찾아갑니다. 그는 아버지가 다녔던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보다 조금만 더 낫게 살 수 있다면 지금의 이 무료한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작은 불만족스러운 요소들은 ‘자신의 우월감’으로 대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 던 중 에이프릴은 남편의 과거꿈을 다시 이루자며, 현재를 도피하기 위해서 파리로 떠나자고 말합니다.
사실 현실을 현실적으로 살아가고 있던 프랭크는 떠나는 것이 두렵지만, 그 또한 하나의 우월감으로 현실을 떠나고자 결정합니다. 그러던 중 프랭크는 승진제안을 받게 되고 그 기회에 그는 흔들립니다.
설상가상으로 에이프릴은 셋째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부동산 중개인의 아들 ‘존 ’은 수학 박사과정을 수료할 만큼 인재였지만 전기 충격으로 인해 사회성을 잃은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관찰력과 논리력을 바탕으로 위선과 가식을 덮어 서로 말하기를 피하는 프랭크와 에이프릴에게 현실을 직시시킵니다.
사실 에이프릴 역시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나 책임감이 있던 것이 아니고 프랭크 역시 새로운 삶에 대한 욕구가 크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존의 질문에 현학적인 태도로만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승진이 욕심났던 프랭크는 에이프릴의 임신을 핑계로 파리행을 좌절시키며 자신의 외도사실까지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격렬하게 싸우는 두 사람.
다음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에이프릴은 밥을 차려주고 사과를 합니다. 프랭크 역시 그녀에게 사과하고 집을 나섭니다. 그가 떠난 모습을 창가에서 지켜본 에이프릴은 무언가 결심한 듯 2층으로 올라갑니다.
당시 낙태는 불법이었기에 에이프릴은 직접 아이를 지우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였고, 결국 그녀는 과다출혈로 사망에 이릅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녀의 죽음 앞에서 절규하는 프랭크와 불행한 결말은 맞은 프랭크윌러가족과 함께
주변의 조금 못나보였던 부부과 주변인들의 행복한 모습을 대비시키며
이웃의 다른 부부들은 애도보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을 욕하며 이웃의 불행이 자신의 현실에 전염될까 봐거리를 둡니다.
또한 엔딩신에서 중개인 부부 중 아내가 에이프릴 부부를 힐난하는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보청기 소리를 줄여 그 상황을 회피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침묵과 회피로 일관하며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 부부의 또 다른 최후를 보여주며 현실과 이상 사랑과 미움 불행과 행복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2. 시대적 배경 및 영화 해석
11년 만에 만나는 ‘타이타닉’ 커플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재회를 흥행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절친으로도 유명한 두 배우는 혁명의 길이라는 뜻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살고 있는 위기의 부부 에이프릴(케이트윈슬렛)과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연기합니다.
여기에 아메리카 뷰티로 아카데미 수상 경력이 빛나는 샘 멘데스 감독 연출 등으로 기대를 모았던 영화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마이클섀넌) , 미술의상, 의상상 노미네이트 제6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 수상 및 감독상, 남우주연상, 작품상 노미네이트 됩니다.
케이트 윈슬렛은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에서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샘 멘데스 감독은 당시 케이트윈슬렛과 부부였고, 윈슬렛과 디카프리오는 유명한 절친이었는데 두 사람의 정사신을 남편인 샘멘데스가 자세하게 디렉팅 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도 유명합니다.
11년 만에 보여주는 두 미남 미녀(잭과 로즈)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기대하셨다면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영화는 초반부터 서로를 할퀴고 공격하는 적나라한 대사를 통해 부부싸움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두 부부는 서로에게 진실하지도 솔직하지도 않습니다. 외도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현실을 도피하는 프랭크는 끝내 그녀에게 자신의 외도사실까지 털어놓습니다. (도대체 왜.. ) 파리의 돌파구를 꿈꿨던 에이프릴은 세번째 임신에 좌절하며 현실에서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게 됩니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은 중개인 헬렌의 아들 존입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파리를 꿈꾸는 둘에게 그는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질문을 던져 두 부부를 더 절망시킵니다.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는 사랑과 관계
머물 수도 머물지 않을 수 도 없는 삶을 보여주는 무의미하고 절망적인 인생을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관계의 최소 단위인 부부의 싸움은 흡사 전쟁과도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려고 한 것은 단순한 이상과 현실의대립이 아닙니다.
이들은 원치 않는 동네를 선택하는 대신 그 동네를 적당히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이웃 주민들을 적당히 내려보며, 자신의 우월함을 스스로 위로하며 타인들의 시선에서 가장 멋진 부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두 부부에게 헬렌의 아들이자 정신병자로 분류되는 ‘존’은 현실을 직시하게끔 직언을 가감 없이 내뱉습니다.
이상을 좇으며 살아가기에는 현실이 너무 버거운 두 부부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 레볼루셔너리‘라는 뜻처럼 혁명을 마음에만 두고 살아갑니다. 사실 그들은 각자 다른 이상과 현실을 원했고 그것이 합치되는 것이 혁명처럼 거대하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남자는 '좀 더 나은 현실'을 이상이라 믿었고 여자는 '자신의 실패가 아닌 것'을 이상이라고 믿고 그 현실에서 벗어나기 원한 것입니다.
혁명이라는 모순의 굴레 아래 이상도 현실도 선택할 수 없는 두 남녀를 그린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였습니다.
강렬한 첫 만남 이후 그들의 삶은 동화처럼 마냥 행복하지 않고, 미세한 균열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관심사를 묻는 여자와 일상적이고 무미건조한 대답을 하는 남자,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을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베이지색 옷을 입은 두 부부가 혹평을 받은 에이프릴의 연극에서 돌아오는 길에 싸우는 장면은 가히 압도적일 만큼 현실적입니다.
죽일 듯이 싸웠지만 두 사람은 지리멸렬한 일상 속에서 헤어지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며 일상속에서 허우적댑니다.
영화는 4등분으로 명확히 기승전결의 구조를 이룹니다.
공허함을 보여주고(기) 공허함을 해결하기 위해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 파리행'을 선택합니다.(승)
변화를 결심하며 희망이 차오르지만 프랭크의 승진기회로 혼란스러워지고 (전)
결국 에이프릴의 임신과 프랭크의 외도까지 드러나며 두 부부의 속사정은 여과 없이 드러나며 영화의 종반부로 내닫습니다.
이미 승진기회로 더 나은 이상을 찾게 된 프랭크는 파리로 가지 않을 핑계를 찾던 중 에이프릴의 임신을 핑계 삼아 자신의 결정을 종용하고 심지어 외도까지 고백하며 에이프릴에게 자신의 방식을 정당화합니다.
그런 에이프릴 역시 일상의 권태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택’을 선택하며 에이프릴은 스스로 낙태를 결심합니다.
3. 영화해석 및 명대사
단순히 이상과 현실의 대립으로만 그 둘을 이분한다면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누군가는 악인이거나 누군가는 그 반대에 있을 테지만 아무리 영화를 봐도
누가 더 나쁘거나 누가 더 착하다고 말할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분명하게 그들은 자신이 정의했던 이상과 현실이 달랐던 것입니다.
어떤 책에서 대부분의 갈등이나 논쟁은 사실 '단어'에 대한 정의가 다를 때가 80-90퍼센트라는 이야기를 봤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나에게 헌신하지 않았어'라고 말한다면 부부들은 흔하게 싸우곤 합니다.
'내가 헌신하지 않았다고? 너를 위해서 선물도 사주고 맛있는 식사도 차려줬다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도 맞고 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헌신'이라는 그 단어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달랐을 확률이 높습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배'를 보며 내가 과일을 떠올리며 노란색이라고 말할 때 누군가는 신체부위를 연상하며 살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영화의 두 부부의 달랐던 정의는 '이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의 '이상'은 많이 달랐습니다.
먼저 프랭크의 이상을 보면, 그에게는 어떤 이상이 있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이상이 정말 '파리' 그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파리로 가려던 그의 계획은 그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야망'을 에이프릴이 부추긴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지금이 나쁘진 않지만 지금보다 좀 더 잘 살고 싶었던 것이 현실에서 벗어난 이상즈음이었던 것입니다.
즉 그의 야망은 매우 모호했습니다.
아버지가 다니던 직장에 다니던 그는 아버지가 말단직원으로 정년을 마친 것에 불만을 가졌고
자신이 아버지보다 낫게 살 수 있다면 만족이자 이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그에게 '중역 승진' 제안은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파리의 삶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웠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는 비교적 만족을 느끼며 그것을 이상의 현실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에이프릴은 달랐습니다.
그녀에게 아이가 , 예쁜 집이, 남편의 승진이 만족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정해진 시스템 속에서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의 권태를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시대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었고, 그녀가 고를 수 있는 선택들은 주어진 상황에서는 그리 녹록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녀는 자유분방하고 개성 있는 여성임을 보여줬지만, 영화 내내 결혼생활 내내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연극 무대 위에서 조차 그녀의 존재감은 미미했고 그를 통해 사회적으로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프랭크와는 다르게 사회의 규칙이나 통념에서 만족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진 않지만 스스로 찾고 싶던 ‘특별함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사회에서 인정받기 쉽지 않은 구조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매우 제한 적이었기에
그 파국 또한 마냥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마치 그녀의 무책임함이 영화의 결론처럼 비쳐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랭크가 가해자가 아니듯 에이프릴 역시 피해자가 아니고
완벽하게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두 부부의 풀지 못하는 갈등을 그렸습니다.
에이프릴이 찾고자 했던 건, 프랭크가 보지 못했던 것 그 어딘가쯤에 두 부부의 이상과 현실의 조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허무와 절망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죠. 하지만 절망을 보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요”
“의미 있게 사는 게 미친 거라면 난 얼마든지 미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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